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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현상학

정의::후설의 현상학

by 이호영마티아 2007. 3. 6.
후설의 현상학

1.지적인 배경

"현상학자가 만일 이 교탁에 관해 묻는다면,그에게 문제되는 것은 오직 이 교탁의 의미이다."(W. 마르크스)

현상학의 성격을 함축하는 위의 인용구를 이해하기 위해 반대쪽에 위치한 표준적 방법론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는 어네스트 네이글의 「과학의 구조」 의 한 구절을 좀 길지만 인용해보자. 매우 매력적이고 기지에 넘치는 글이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성인이라면, 통상적 수은 온도계로써 온도를 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도구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다양한 물체의 온도를 적절한 정확도로 알아낼 수 있으며, 그 도구를 조작함으로써 우유잔의 온도가 섭씨 10도 라는 식의 언명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성인 가운데 상당수는 분명 <온도>라는 말의 뜻에 대해 열역학을 교육받은 사람이 만족할 만한 정도로 해명하지는 못할 것이며, 아마도 그 말의 용법을 지배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명확히 드러내지도 못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인들은, 비록 제한된 맥락 내에서일지라도, 그 말의 용법을 알고는 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온도>라는 말의 뜻을 전적으로 수은 온도계를 조작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만일 그 사람이 만오천 도의 온도에서 녹는 물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는 아마도 그러한 언명의 뜻을 이해치 못해 당황해 할 것이며, 심지어 그가 들은 말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가 들은 정보에 대해 이처럼 당황하게 되는 일은 그가 기초 물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면 즉시 사라질 수 있다.왜냐하면 그 때에는 <온도>라는 말이 예전에 자신의 용법을 규제했던 규칙보다 물리학 내에서 좀더 포괄적인 일련의 사용 규칙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어떤 물체의 상태를 가리키기 위해서 그 말을 쓰고 있으며, 그러한 상태의 변화는 흔히 수은의 부피 팽창과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그러나 이제 <온도>라고 할 때 좀더 일반화된 의미를 얻은 일상인이 물리학 공부를 계속해 기체 운동론으로까지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 보자. 이때 그는 어떤 기체의 온도란 가정상 그 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평균 운동 에너지임을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는 이러한 새 정보로 인해 새삼 당황해 하며, 실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
  만일 <온도>의 의미가 실상 <분자들의 평균 운동 에너지>라는 의미와 동일하다면, 이제 거리의 일상인들은 우유의 온도가 섭씨 10도라고 할 때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아마도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대부분의 우유 소비자들은 분명 분자의 에너지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그 말을 이해하고 그 용법을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대개 물리학에 조예가 깊지도 않고, 우유의 분자 구성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거리의 그 일상인이 우유의 분자들에 대해 알게 될 때, 그로서는 무엇이 진정한 <실재>이며 무엇이 단지 <현상>일뿐인가에 대해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니스트 네이글, 577페이지)

위의 구절은 하위단계의 과학으로 상위단계의 과학을 환원할 때 나타나는 혼란에 대한 창발론적 입장에서의 사례구성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후설의 용어로 자연주의적  태도가 대상을 보는 방법을 보여준다. 자연주의적 태도는 이론의 틀에서 의미를 규정한다. 첫째는 원시적인 온도계를 통한 조작개념인 <온도>에서 보다 일반화된 온도계를 통해 특정하는 <온도> 개념으로 마지막으로 기체 운동론이 정의한 <온도> 개념으로 우리는 거리에 있든 실험실에 있든 이론이 지도해 주는 온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실증주의의 주된 내용이다. 또한 대중교육의 발달로 지성화된 일반대중들에게 이러한 자연주의적 태도는 그럴듯하고 매력적이다. 우리는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 등을 항상 어떠어떠한 이론의 틀을 통해서 바라본다.

  후설현상학은 이러한 지적인 태도, 로고스가 이끄는 삶에서 판단중지하고 과학이전의 영역인 생활세계 Lebenswelt 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위의 예에서 주인공은 기체분자운동론이나 에너지론에 기대서 온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0도로 덥혀진 우유 한잔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즉 내 앞에 주어진 섭씨 10도의 우유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과학자 공동체 사이에서의 에너지론과 기체분자론의 문화적 의미, 인격적 의미 등을 물어야 한다. 생활세계로 다시 돌아가 의미를 묻는 반성적 태도가 바로 개별과학 이전에 수행되어야 할 현상학적 수행의 내용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은 개별과학마다 앞선 존재로서 영역별로 재탄생한다. 그것이 후설의 기획이고 그는 책상, 공동체, 기하학적 도형과 같은 일종의 샘플모델들을 가지고 그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남겼고 그러한 모범은 국제적 운동으로 상당히 넓은 분야에서 실천되었고 실천되고 있다.

후설 스스로 그의 현상학을 독일 관념론의 선험적 관념론의 완성된 형태로 보았다. 현상학은 이른바 표준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는 자연주의-실증주의-경험주의의 반대편에 위치하되 기존의 정신과학적 생철학적 흐름(딜타이,신칸트주의)들보다는 표준적 방법론에 훨씬 더 가까이 위치한다.딜타이와 J.S.Mill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면 거칠지만 정리가 된다.또한 실증주의에 대한 보완으로서도 인정되고 있으며 그 점은 후설 그 자신이 자신의 현상학을 '진정한 실증주의'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2. 현상학적 절차

  과학은 팩트에서 본질로 나아간다. 단순한 팩트로부터 본질이 얻어지지 않는다. 실증주의는 경험과 관찰로부터 객관적 세계를 구성한다고 하지만 '단순한 사실과학은 다순한 사실 인간을' 만들뿐이다. 감각경험에서 본질이 얻어지기 위해서 형상화 즉 형상적 환원 eidetic reduction 이 수행된다. 후설의 현상학은 선험적 환원이 이 형상적 환원에 필수적으로 수반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형상적 환원은 피로니즘적인 판단중지 epoche 를 통한다. 방법론적으로 외부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중지하고 사태를 관찰한다. 객관적 세계가 나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 관찰하는 존재인 선험적 자아가 나타나고 선험적 현상학은 이 선험적 자아를 탐구한다.
 
참고-왜 선험적 현상학인가

  다시 말해서 감각경험은 결코 원의 본질을 주지 않고 다양한 일그러진 동그라미들만을 제시하지만 우리는 형상적 환원을 통해 원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마찬가지로 생활세계의 공동체와 타자의 존재는 이미 명백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그 안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우리는 타자의 존재를 감각경험적 자아의 구성행위로서 만들어낼 수 없다. 어떻게 감각경험에서 세계인식으로의 비약이 일어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상학의 과제이다. 어떻게 세계의 일부가 세계를 인식하는가.어떻게 티코 브라헤의 나열된 데이타 값들이 케플러의 우주관으로 연결되는가. 위대한 과학자는 그런 면에서 현상학적 사고를 필수적으로 거쳐 간다. 플라톤주의를 버리고 티코브라헤의 데이타를 선택한 케플러의 결단은 바로 판단중지이고 반법칙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하지만 현상학은 단순한 반성적 태도만은 아니다.
 즉 어떻게 팩트에서 본질인식이 이루어지는지를 보는 것이 현상학이 하는 일이고 그것은 선험적 자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상학은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를 탐구하는 것이고 당연히 모든 과학적 활동에 앞서서 그리고 함께 수행되어야 하는 작용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나와 다른 사람들, 다른 과학자들과 그들의 실천들, 특히 이론적 실천들이 하나의 세계로 존재하는 생활세계이다. 이 생활세계를 괄호치면서 현상학적 활동은 개시된다. 현상학은 모델가설로 그것을 설명하는 과학활동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서 거인들보다 더 멀리 보아야 하지만 때때로 발밑에 내려와 밑을 살필 필요도 있음을 역설한다.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가 있고 과학적 세계가 있다.

3.참고자료

W.마르크스 지음(1987)/이길우 옮김, 「현상학」(서광사,1989) : 후설의 현상학의 핵심을 간략한 분량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독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도 도움이 된다.

에드문트 후설 지음(1936)/이종훈 옮김,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한길사,1997): 이 책에선 생활세계의 현상학이 전개되고 이후 슈츠,하버마스 등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응용되었다.

어니스트 네이글 지음(1961)/전영삼 옮김, 「과학의 구조2」(아카넷,2001): 자연과학의 방법을 사회과학에도 적용가능하다는 자연주의 오도독스를 구현한 과학적 방법론 교과서.원자물리학에서 사회학까지를 하나의 통일과학으로보고 그렇게 책의 체계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