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위기'(1935) 읽는중.
생활세계가 명증적이라. 뭐가 과학적 사고를 작동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더이상 명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관찰자는 정서적 긴장상태에 있고 주관이든 객관이든 세계는 뒤틀어져 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사고하기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과연 과학적 사고 이전의 바탕이 되는 생활세계가 과학적 과학활동 수행의 토대로서 명증적으로 통각되는지. 생활세계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반드시 명증적인 것만이 토대가 될 필요는 없다.
아래의 토막은 공감이 가고 벽에 걸어둬야 될 듯.
225.p
"과학 이전과 과학 이외의 생활에서 진리의 이념은 순수한 경험 속에서, 즉 지각이나 기억 등 그것의 모든 양상들 속에서 자신의 궁극적이며 가장 깊은 확증의 원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각이나 기억 등과 같은 말들은 실제로 과학 이전의 생활 자체가 이해하는 바 그대로 이해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우리는 그때그때 객관적 과학으로부터 어떠한 심리물리적 해석이나 심리학적 해석을 과학 이전의 생활에 도입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점에서 온갖 학설을 괄호치고 팩트를 다시 관찰하라는 것. 그것은 경험이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증적이라는 표현은 트릭인데 가령 컵의 뒷면에 대한 통각은 그렇지만 복잡한 사회현상의 문제상황과 같은 것은 그렇게 명증적이지 않다. 이 경우 명증적이라는 것은 문제 원천으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해석된 모델에 의해 문제를 재정의 하지 말고 문제 상황 자체에서 재출발하라는 말과 같다.
그 반대의 경우가 일반적인 과학수행의 절차이다. 즉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사태를 바라본다. 현상학은 그 반대의 것을 가르친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기존의 근대과학이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생활세계가 명증적이라. 뭐가 과학적 사고를 작동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더이상 명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관찰자는 정서적 긴장상태에 있고 주관이든 객관이든 세계는 뒤틀어져 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인간은 사고하기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과연 과학적 사고 이전의 바탕이 되는 생활세계가 과학적 과학활동 수행의 토대로서 명증적으로 통각되는지. 생활세계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반드시 명증적인 것만이 토대가 될 필요는 없다.
아래의 토막은 공감이 가고 벽에 걸어둬야 될 듯.
225.p
"과학 이전과 과학 이외의 생활에서 진리의 이념은 순수한 경험 속에서, 즉 지각이나 기억 등 그것의 모든 양상들 속에서 자신의 궁극적이며 가장 깊은 확증의 원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각이나 기억 등과 같은 말들은 실제로 과학 이전의 생활 자체가 이해하는 바 그대로 이해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우리는 그때그때 객관적 과학으로부터 어떠한 심리물리적 해석이나 심리학적 해석을 과학 이전의 생활에 도입해서는 안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점에서 온갖 학설을 괄호치고 팩트를 다시 관찰하라는 것. 그것은 경험이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증적이라는 표현은 트릭인데 가령 컵의 뒷면에 대한 통각은 그렇지만 복잡한 사회현상의 문제상황과 같은 것은 그렇게 명증적이지 않다. 이 경우 명증적이라는 것은 문제 원천으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해석된 모델에 의해 문제를 재정의 하지 말고 문제 상황 자체에서 재출발하라는 말과 같다.
그 반대의 경우가 일반적인 과학수행의 절차이다. 즉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사태를 바라본다. 현상학은 그 반대의 것을 가르친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기존의 근대과학이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